*쓰는 일에만 열중하는 시들이 있다. 그런 시를 만나면 쉽게 지치고 빨리 길을 잃어 버린다.무엇이 가능한걸까, 말과 말을 잇기만 한다면 시가 탄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한걸까.그런 희망의 메타포를 마꾸 쏴대는 시를 보여주고 싶었던걸까.*그래도 이런 묘사는 반갑다.그래도 우린 잠든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꿈에서 등을 돌린다 투둑투둑 천장과 바닥이 호응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 누워 기다린다 열매가 떨어지기를 땔깜이 모자라기를 마른풀이 전부 젖어버리기를 우리를 간통하는 물방울들아름답다고 생각한다.*이렇게 좋은 무게감과 연상을 갖고 있으면서, 왜 그토록 많은 시들이 재빠르게 달아나는 것인지-무궁무진하게 쏟아지는 날선 단어들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. 뭘 말하고싶은지 도대체 모르겠다.
우리는 함께 끝장나는 중이다. 전부 소진될 때까지,/소진되고 난 이후 소진된 것이 다시 소진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난날의 암호를 복기하거나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그저 서로를 두들겨 패며 울음을 터뜨리는 일뿐이다.
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마음껏 싸워볼 수도 없이 영원히 전투태세만을 유지해야 하는, 즉 진짜 끝장은 일어나지 않지만 전시 상태도 끝나지 않는 무력한 상황에서 우는 듯 웃는 듯 이상한 표정으로 지쳐가는 것이다.
백은선의 가능세계 는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퍼포먼스 너머 절대 똑같이 반복해 쓸 수 없는 시로써, 이러한 절망과 파국의 시대에 유일하게 가능한 시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.
시인의 말
1부
어려운 일들 / 명륜동 성당 / 유리도시 / 변성 / 범람하는 집 / 어려운 일들 / 눈보라의 끝 / 밤과 낮이라고 두 번 말하지 / 중력의 대화자들 / 발생연습 / 병원 손님 의자 테이블 / 청혼
2부
야맹증 / 파충 / 나이트 크루징 / 가능세계 / 아홉 가지 색과 온도에 대한 마음 / 터널, 절대영도 / 미장아빔 / 음악 이전의 책 / 독순 / 사랑의 역사 / 종이배 호수 / 질문과 대답 / 질문과 대답 / 고백놀이
3부
자매 / 멸종위기 / 여름시 / 언플러그드 朔 / 木浦 / 목격자 / 혈액병동 라디오 / 기면발작 / 열대병 / 모자이크 / 저고
4부
동세포 생물 / 동세포 생물 / 호텔 밀라파숨 / 상주망 아버지 / 성스러운 피 / 가장 죽은 이상하고 아픈 / 파델의 숟가락 / 뼈와 그림자 / 비신비 / 비신비 / 박쥐 / 도움의 돌
해설 | 소진된 우리 · 조연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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